시진핑은 중국어로는 습근평이라 부르며, 공식 직함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입니다. 중국을 다스리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2남 2녀 중 셋째이며, 1953년 6월 1일 베이징 출생입니다. 개혁 개방론자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국무원 총리를 역임하였으나, 1962년 산시성으로 좌천되어 베이징을 떠나 산시성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1978년 아버지 시중쉰이 광둥성 제2 서기로 복권되었고 그 뒤 광둥성 서기가 되면서, 시진핑의 앞날이 피웠다는 것이죠. 칭화대학교를 졸업한 뒤, 국무원 껑바오 부총리의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008년 3월부터 중국의 부주석이 되었고, 2012년 11월 마침내 후진타오를 잇는 총서기직을 물려받게 되죠.
그가 인정받게 된 가장 중요한 업적은 베이징 올림픽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성공적이었으며, 그 뒤에는 시진핑이 있었죠. 시진핑은 이미 결혼을 한번 한 전력이 있었으며, 두번째 부인인 중국의 최고 스타인 가수 펑리위안과 결혼하였습니다.
시진핑이 주석이 되기전 가장 큰 경쟁상대는 후진타오가 낙점한 리커창이었습니다. 시진핑은 장쩌민의 푸시를 받았으며, 리커창과의 라이벌전을 막판 역전극으로 압도하며 주석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시진핑은 운이 좋은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정치 좌천으로 타격이 있었던 그에게는 불안한 미래가 더 컸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리더십이 있었으며, 부지런하며 동년배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청년이기도 했습니다. 관료 부패에 대해서 엄격하였으며, 정치적-경제적으로도 개방적인 자세를 가진 주석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문제였는데, 중국으로서는 이상하고 기괴한 행동만 저지르는 북한이 밉지만, 동맹국이라 버릴 수도 없고, 교역국인 한국이 좋다고 드러낼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습니다. 중국 곳곳에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고 두 나라 사이를 오고 가는 관광객들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시진핑의 개방 속도는 멈출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시진핑은 본래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단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북한이 과거 동맹국이지만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고뭉치 북한과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중국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변화와 다르게 아직도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의외로 돈독해지는 이상한 기류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시진핑은 인지도 없는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고, 후진타오의 총애를 받는 리커창에게 한참 밀렸습니다만, 쩡칭훙이라는 부주석의 힘이 시진핑을 주석으로 반등시킨 가장 큰 영향력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과 이웃사촌이었으며, 정치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쩡칭훙은 마음과 마음이 통한 사이였습니다.
이런 거 보면은, 정치도 인맥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 정치는요.
시진핑이 중국의 주석이 되기 전 특별한 모습을 보자면, 중앙을 떠나 지방에서의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앙에서만 입지를 다스렸다면, 지금의 주석의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시진핑을 얘기했죠. 젊은 간부들 중에서도 시진핑처럼 지방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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