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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및 정보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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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메르켈 총리 4부(마지막): 메르켈 업적 독일의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히틀러 때의 일입니다. 전범국이라는 악명이 주홍글씨처럼 씌어진 독일로써 메르켈은 독일의 과거사에 대해 끈끈히 반성하는 마음과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왔습니다. 인감의 존엄성과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메르켈은 한때 이슈였던 원자력 발전의 폐기를 지지하며 녹색청정 에너지 산업으로 대대적인 전환 정택을 추구하였습니다. 특히 독일은 기계정밀 제조업에서 세계 최강이었으며, 유럽이 어려울때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며 세계 최상의 중소 기업으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강대국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 기준으로만 볼때도 노동생산성 비용이나 평균 실업률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메르켈의 큰 장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선동하는 ..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견과류와 섬유질 - 식품점에 가는데, 왜 굳이 스태틴 약이 필요할까?? 예전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경이의 약 스태틴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습니다. 사실 이 약품이 혈액 중 나쁜 콜레스테롤, 즉 LDL의 수티를 크게 낮추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스태틴은 값이 비싸고 투약을 계속하는 동안만 효과가 있는 약 뿐이었습니다. 또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투약하면 안되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약품에 거의 못지 않게 콜레스테롤을 낮춰 주는 식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아주 고무적인 것이었습니다. 토론토 대학 연구진은 3가지 각기 다른 양생법을 비교한 실험에 관해 설명했었습니다. 3가지 양생법이란, 1. 포화지방이 적은 채식 2. 스태틴 약을 보충한 채식 3. ..
독일 메르켈 총리 3부: 유럽 여장부, 독일 엄마 총리 메르켈의 업적. 메르켈은 이미 유럽 영국에서 전설적인 마가릿 대처를 능가하면서 최장수 여성 총리로써 타이틀을 갖았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그녀는 섬세한 감성 리더십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메르켈은 자녀가 없습니다. 스스로 낳은 자식들은 없지만은, 독일 국민의 우상으로 떠오른 여성입니다. 친정엄마같은 지도자라는 별칭도 갖을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정과 발전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쓰는 총리입니다. 원래부터 강대국 선진국이었던 독일을 더욱 더 경제발전에 성장을 만들었으며, 실업률 또한 역대 최저치인 성과를 낸 훌륭한 총리였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이바지했다는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총리가 되기전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헬무트 콜 총리는 메르켈을 정치에 입문하도록 가장 큰 힘을 쓴 메르켈의 모태적인 인물..
독일 메르켈 총리 2부: 이혼과 재혼, 정치인으로 나서다. 메르켈은 첫 결혼에는 실패하였습니다. 23살 때 동창생과 결혼하였지만, 사랑이 없는 결혼이어서 그런지, 일찍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4년만에... 돌싱으로 연구소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86년 이 때 만났던 사람이 지도 교수인 요하임 자우어 박사였으며, 그와 1998년에 재혼하게 됩니다. 40대에 말입니다. 자우어 박사 또한 재혼이었으며, 그에게는 2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메르켈과의 결혼생활 때 새로운 자식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자우어 박사는 또한 공식적으로 메르켈의 남편이라는 인터뷰나 사진에 찍히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는 전혀 나오기 싫어하는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의 남편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라는 평을 내리며, 매우 소중한 남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1991년 ..
독일 총리 메르켈 1부: 메르켈 성장과정 독일을 세계 일류 강대국으로 만들면서 독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메르켈 총리는 1954년 함부르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교사였습니다. 태어난 지 3개월 뿐이 안된 메르켈은 아버지(호르스트 카스너)의 목사 활동으로 인하여 동독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고향이 독일이 분단되면서 동독의 땅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의 정신은 기독교의 사랑과 박애 정신을 바탕이었습니다. 메르켈은 학창시절부터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으면, 대학교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만, 동독 공산 정부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뚝심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독으로 넘어온 메르켈은 그때부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죠. 목사인 아버지에 의해 동독에서 생활한 메르켈 가족의..
스티브 잡스 4부(마지막): 사망 후 밝혀진 진실과 명언 잡스는 초창기 애플에서 해고되기 전에는, 매우 무뚝뚝하고 고집도 센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로 복귀하고 나서의 가장 큰 변화점이 있었다하는데, 그것은 직원들에게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칭찬에 무색한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모든 직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 하나하나가 잘하는 일을 원없이 칭찬하면서 사기를 복돋아주웠습니다. 직원 하나하나의 장점을 캐치하면서 직원들에 대해 칭찬은 각 직원마다 자존감을 올려주는 일이며, 또 그일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살아있을 때에 자선활동에 무색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망하고 나서 아주 잘못된 사실로 전해졌었습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이 꼭 자선활동을 맹목적으로 해야하는..
스티브 잡스 3부 : 스티브잡스의 사업특징과 유별난 점. 스티브 잡스의 별난 점이 있다면은, 평생 특허를 싫어했다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여담이지만, 특허를 싫어했던 잡스에게 아이러니 했던 것은 스타일러스 라는 제품을 유일하게 특허신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이 제품을 부정하고 싫어했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자식에게 컴퓨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었습니다. 잡스의 생각은 PC나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얼마나 큰 리스크가 생길건지 알았으며 일찍이 자식들에게 이런 룰을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중독은 자칫하면 감정적 불안이나 상대방과의 대화 단절, 감성을 죽일 수 도 있다는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운동 부족까지도요. 스티브 잡스는 열정과 신념도 그렇지만, 감성도 중요시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의 스피치에..
스티브 잡스 2부: 잡스의 신념과 사업 초창기 흥망성쇠. 스티브 잡스의 신념은 대단했습니다. 잡스가 강조한 대표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념과 실행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소통에서부터 잡스는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유머까지 있어서 타인의 집중력까지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스피치 능력을 가지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사기를 복돋아주는 역할을 잘 수행해냈습니다. 사람의 장 단점을 파악하면서 경영능력도 매우 좋았습니다. 단점이라면, 고집이 너무 심하여 엄청난 고집쟁이라고 불리웠으며, 사람과의 타협보다는 자신이 맞다는 생각은 뚝심있게 밀고 나가며 독선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욕심도 많은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위대해 지고 싶다면 열정을 가져라. 열정은 인간에게 무한한 힘과 활역을 준다. 열정이 없다면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