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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및 정보알리기

<타임>지 선정. 지난 100년간 세계를 바꾼 대사건 Top 8 -1부-

타임지가 선정했던 100년의 역사 중 세계를 바꾼 대사건의 Top 8을 소개해드리는 글입니다. 4개의 사건을 소개하며, 나머지 4개의 사건은 2부로 나뉘어서 글을 쓸 예정입니다. 

 

- <타임>지가 선정한 지난 100년간 세계를 바꾼 8대 사건

 

 

1. 1923년 11월 8일 :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콧수염을 모나게 기른 남자가 뮌헨의 큰 맥주홀 뷰르거브뤼 켈러에서 테이블 위에 뛰어오르더니 천장을 향해 총 한 발을 발사했다. "국가 혁명은 시작됐다"라고 그는 외쳤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는 강변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휴전조약에서 독일에 과해진 굴욕적 조항들에 대해 바이마르 정부가 무력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독일 국민들이 불만으로 들끊자 히틀러는 기회가 왔음을 감지했다. 밤 9시 직전에, 그의 나치당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정부요인 세 사람을 인질로 잡았다.

 

 수백 명의 돌격 대원들이 맥주홀을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그는 세 요인들에게 자기를 지지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나치의 승리에 대한 도취감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히틀러에게 "지지를 강요당한 세 사람"은 맥주홀을 빠져나가 그를 규탄하였다. 

 

 다음날 나치당원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그들을 향해 발포했다. 히틀러는 체포되었다. 반란은 웃음거리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의 재판에서 위대한 독일은 재건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5년 징역형 중 8개월만 복역한 히틀러는 나치즘의 기본이론이 적힌 첫 번째 저작 <나의 투쟁>을 가지고 감옥을 나왔다. 한 때의 웃음거리는 가공할 펀치라인이 될 것이었다. 

 

 

 

2. 1938년 3월 3일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전 발견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아브드-알-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미국의 한 기술팀에게, 페르시아만에 임해 있는 인적 없는 사막을 개발하도록 허락하였다. 이 곳은 불모의 땅으로서 야자수에 둘러 쌓인 오아시스가 몇 곳 있을 뿐이었다. 국왕은 개발팀이 그곳에서 물을 찾아내기를 기대했다.

 

 재정이 궁핍한 부족의 왕으로서 이븐 사우드는 미국 사람들이 물이 나오는 곳들을 발견하여, 그의 전사들이 끌고 다니는 말과 낙타의 목을 축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탠다드 오일 개발팀은 마음속에 다른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석유가 발견되었으므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새로운 유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술팀은 믿었다. 몇 해에 걸쳐 그들은 7~8곳에서 구멍을 뚫었으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유정 제7호를 더 깊이 파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이 1441m 까지 파 내려갔을 때 마침내, 후일 세계 최대의 원유 공급지가 된 곳을 찾아낸다. 사우드 왕은 처음 이 뉴스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국왕과 그의 일행이 400대의 자동차 행렬을 이루며 라스 타누라의 펌핑 스테이션에 도착하여, 최초의 탱커가 사우디 원유의 화물을 끌어올리는 것을 지켜본 것은 유전 발견 만 1년 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국왕은 이슬람 최고의 성지인 메카로 오는 회교 순례자들이 떨어뜨리고 가는 수입에는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왕국의 석유자원은 중동지역의 정치와 세계 에너지 공급 협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3. 1945년 8월 6일 :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폭 투하

 오가다 에미코가 눈이 멀 정도로 부신 섬광을 보았을 때 그녀는 8세였고, 마당에서 두 어린 남동생과 놀고 있었다. 이윽고 요란한 굉음이 울렸으며, 심한 폭풍은 그녀를 땅에 때려눕혀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었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나는 태양이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느꼈다"라고 에미코는 회상한다.

 

 동생들은 그녀 옆에서 울부짖고 있으며, 몸은 화상으로 부풀어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옷이 벗겨지고 피부 껍질이 너덜너덜 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의 광경이었다. 일본의 이 남부도시에서는 아무도, 미국의 B-29 폭격기 3대가 머리 위 멀리서 접근하는 욍욍 소리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 폭격기들 중 하나인 '에놀라 게이'는 아침 8시 15분 폭탄 하나를 투하하였는데, 이는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이 끝내 항복하지 않을 경우 사용하겠다던 '파멸의 폭우'를 내리게 한 것이었다. 

 

 징용에 끌려간 한국인들과 일본 제국 육군부대를 포함하여 히로시마에 있던 35만 명의 약 3분의 1이 이 폭탄으로 즉사하였다.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 해독 때문에 사망했다. 이 폭탄은 유리를 액체로, 건물을 먼지로, 그리고 사람을 폐허 속에 부각된 그림자로 만들어버렸다. 

 

 

4. 1954년 7월 5일 : 엘비스 프레슬리의 발굴

샘 필립스는 발라드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곡을 몇 가지 칠 줄 알며, 보라는 듯이 본명 엘비스 프레슬리를 당당하게 사용하는 잘생긴 시골 젋은이에 관해 소문을 듣고 있었다. 필립스는 새로운 가수를 찾아내기 위해 그의 '선 레코즈' 스튜디오에서 멤피스의 거의 모든 가수들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월요일 여름 저녁에 19세의 엘비스는 단지 다음 차례를 맞은 것이었다. 필립스는 신임하는 오디션 테스트의 두 전속 연주자인 기타의 스카티 무어와 베이스의 빌 블랙에서 백업을 부탁했다. 저녁 7시, 몇 분간의 짤막한 이야기와 초조한 웃음이 있은 후, 필립스는 이 세 사람이 둘러서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이윽고 그는 앨비스에게 어떤 곡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더욱 초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엘비스는 몇 곡 밖에 아는게 없었으며, 그것도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기타로 연주할 줄 몰랐다.

 

 어찌됐건, 세 사람은 빙 크로스비가 1950년에 히트한 감상적인 곡 <항구의 불빛>을 서툴게 연주해 나갔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필립스는 스튜디오 조정실에서 "좋았어"하고 느린 말투로 반응을 보였다. 엘비스의 노래는 따분하고 무표정했다. 그리고 필립스는 테스트를 잠시 중지시켰다.

 

 그러자 엘비스는 오디션의 격식을 무시한 채, 기타를 집어 들고 빅 보이로 흔히 알려진 아더 크러덥의 옛 블루스 곡 <그거 잘 됐어>를 연주하며 흔들기 시작했다. 엘비스 말고는 그 당시 블루스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엘비스의 노래는 거의 흥분 상태였으며, 리듬은 전혀 맞지 않았고, 너무도 광기에 차있었다. 그곳엔 드럼이 없었기 때문에 베이스의 블랙은 템포를 맞추기 위해 베이스를 튕겼고, 기타의 무어는 멜로디 라인에 이따금 끼어들었다. 필립스는 그 순간 엘비스의 자질을 알아차렸다. 

 

 그는 조정실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이 3인조에게 자리를 마련해 연주를 계속하라고 일렀다. 이틀 후 밤 <그거 잘 됐어>는 멤피스의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으며, 로큰롤 시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탄생하였다. 

 

 

-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