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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Movie)

아시아 영화들의 주목 시기 2003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전문가들은 전문가다운 자기 고집을 가지고 영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영화가 극장에 올려져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지를 놓고 혈전을 벌였습니다. 스타 감독이 일본의 전설적인 맹인 칼잡이 역을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기 바로 그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이전의 '자토이치' 영화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진정한 다케시 영화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다케시 영화 색깔이 강해서 진정한 <자토이치> 영화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 영화는 영화팬들 투표로 수여되는 관객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익한 영화평을 엿듣기 위해서 긴 줄에 서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택시를 잡아타기만 하면 됐습니다. 토론토의 한 택시 기사는 새 작품을 출품한 이란 감독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이란 영화의 현황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당연히 최고의 거장은 키아로스타미 죠" 그는 마치 그 이름이 승객들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친숙한 냥 말했습니다.

2003년 28회를 맞는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이란에서 부탄 그리고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영화에 대해서는 가장 우호적이고 규모가 큰 북미의 시사회장이기도 합니다. 2003년에 아시아가 토론토에 미친 가장 유명한 공헌이 사스 전염병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토론토 영화제의 호의가 특히나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사스는 극동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로 발병해서 44명의 캐나다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개막 전 몇 달 동안, 부정적인 사람들은, 수술용 마스크를 한 영화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늘 북적대던 스타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영화제를 상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류 호텔엔, 니콜 키드먼, 니콜라스 케이지, 덴젤 워싱턴, 맥 라이너 그리고 그들의 거만한 수행원들로 북새통을 이룬 한편, 영화팬들도 불안한 마음 없이 수술용 마스크도 벗어던진 채 영화관으로 달려왔었습니다.

상영된 영화 중에, 아시아를 불만스런 시각으로 그린 유일한 서구 영화는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대대적인 호평을 받은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그 영화였습니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도쿄에 발이 묶여 있다가 사랑의 불꽃을 일으키는 두 미국인으로 연기한 영화입니다.

이 두 주인공은, 전형적인 멍청한 모습을 한 일본 조연배우들과 대조되어서 예리하고도 사랑스럽게 관찰된 영화입니다. 미국이 정치, 대중문화 등 전반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직도 '미국 쇼핑센터'화 되지 않은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간혹 거인 미국에 대놓고 심한 말을 하는 아시아 영화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변호사의 병든 아버지가 신랄하게 말은 내뱉는 대사.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종종, 아시아 감독들은 서구세계에서 만들어놓은 문화적 영향들을 참조하면서 기꺼이 그것들을 이용했습니다. 비샬 바라드와지의 <마끄불>은 스코틀랜드 영주의 거처에 갱단들을 등장시키면서, <멕베드>를 붐베이로 옮겨 놓은 영화인데, 그럼에도 이 유쾌한 인도영화는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영화 '스카페이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알렉스 갈란드의 원작소설을 옥시드 팽이 감독한 '테세랙'에는 섹시하고도 치명적으로 위험한 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미녀는 도드라진 광대뼈에, 가죽치마에 총을 들고 오토바이를 탄, 그야말로 누아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치장을 했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침실 문을 열면, 우리의 얼굴을 채찍 자국으로 도배해버릴 준비가 된 다섯 명의 거친 태국인들이 침실밖에 서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동양영화는 또한 동양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리챠 핀캐우의 <옹박 무에타이 전사>는, 이소룡에서 성룡으로 이어져온 오랜 홍콩영화의 줄거리를 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시골 출신의 한 소년이 숭고한 임무를 띠고 도시로 와서 쓰라린 패배를 맛보다 결국엔 훨씬 더 화끈하게 앙갚음해준다는 내용입니다.

네 개 대륙의 비디오 액션 팬들을 확실히 기쁘게 해줄, 정신없을 정도로 활기찬 재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고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한 동자승의 수련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는 명상적인 일본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은듯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한국영화는 갑자기 집착과 살인의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는 잃지 않았습니다. 한국영화인들은 대중영화 부문에서 홍콩영화보다 우위를 점유하고 있으며 다른 문화에서 수입해온 것들을 잘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과대망상적인 공상과학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즉, 다가오는 개기월식에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하는데 그들이 머리카락을 이용해서 텔레파시를 보낸다는 것인 내용입니다. 아마도 예전에 누군가 버스에서 당신 옆에 앉아 지껄이는 걸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기가 극에 달합니다. 잠시 동안 영화가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관객들은 광기가 전염되고 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전세계를 주름잡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토론토 영화제의 주요 상영작인 아시아, 유럽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점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남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영화인 반면, 독립영화들은 여성에 관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3 토론토 영화제의 진정한 스타는, 영화제에 직접 참석한 빛나는 여배우들이었습니다. 우선, 공리는 삼각관계를 다룬 순주 감독의 <주유의 기차>에서 보던 중 가장 편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공리가 홍콩의 토니 륭 가파이와 연기하는 에로틱한 장면을 주시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바람난 가족>주인공인 한국의 문소리를 들 수 있습니다. 문소리는 절박하게 성관계를 갈망하는 절망적인 여인 역을 맡아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더 이상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해" 그러더니 문소리는 옆집에 사는 십 대 소년과 격정적인 외도에 빠져듭니다.

아시아 영화인들은 진지한 감독들입니다. 이들은 멍하니 여자들에게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덕심을 갖고 영화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간괴와 연약함 그리고 사회나 못된 유혹, 저주 등에 의해 거칠게 다뤄지는 여성들에 관한 비극적인 영화들 말입니다. 물론 독립영화는 여성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진지한 영화는 언제나 수난당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합니다.